블룸버그 이직 이야기 3편 마지막
2편에 이어서 3편.
아직을 한 후 대략 1년 가량 지난 시점에서 글을 써본다. 이직기 3편이지만 주제는 후기와 가깝다.
기본적인 생활부터 많은게 변했다. 큰 매장들은 자주 가지 않게 되었고 지역의 소규모 상점을 위주로 소비하게 되었다. 환경에 대해서도 이렇게 자세하게 알아본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환경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 일을 하면서 왜 하는지, 누구에게 도달할 수 있을지, 어떤 근거로 이러한 결정을 내리는지 배워가고 있다. 인생의 변곡점을 맞이하고 변화를 즐기게 되었다.
영어는 아직도 많이 불편하다. 그럼에도 1년 전과 비교하면 굉장히 달라졌고, 내가 주장하는 바는 더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언어가 매끄럽지 않으니 명확하게 말해 오해를 줄이려 한다. 일상적으로 나누는 대화도 익숙해졌다. 다만 감정 서술과 영어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 영역(예시로 갈치, 항정살 같이 영어로 말해본 적이 없는 식재료)에 대한 서술이 어렵다. 이 시점에는 후천적인 이중 언어 구사자는 정말 많은 노력을 하고, 선천적인 구사자는 많은 혼란을 겪겠구나 생각이 든다. 그래서 가끔 회사의 한국사람과 만나서 밥을 먹을 때 마음이 너무나도 안정된다.
책은 전부 영문으로 읽으려 하고 있다. 책을 빠르게 읽어내던 사람이라 조금은 답답하지만 배워가는 과정이라 받아들이고 있다. 영국에는 서점이 정말 많고, 그 중에는 책방이라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한 곳도 많다. 사람들도 책을 즐겨 읽는 문화로 보인다. 다만 생소하게 다가오는 것은 대부분의 서적 재고가 소설이다. 전공서적이나 그에 가까운 책을 많이 소장하는 서점은 귀하다. 그래서 내 관심분야와 맞다면 크게 가리지 않고 다독을 시도하고 있다.
요리를 생각보다 많이 시도하게 되었다. 널리 알려져있듯 식재료는 상당히 저렴하나 외식은 비싸다. 원래 요리를 좋아하는 입장에서는 취미로 괜찮다. 화려한 요리는 아니어도 여기만의 맛있고 신선한 식재료가 많다. 그런만큼 한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가 아쉬울 때도 많다.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문화는 의외로 재밌다. 잡담을 쉽게 나누고 먼저 찾아가는 것을 거리끼지 않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친절하고 착한 사람들도 있는 반면, 재밌고 짖궂은 사람도 많다. 컨퍼런스를 참여하며 겪은 미국 문화는 친근한 사람이 많다는 느낌인 반면 여기는 성숙 내지는 예의있다는 인상이다.
한국이 생각보다 그립지는 않다. 여러 사람들이 보고 싶지만 1-2년 단위로 또 보게 될거라 생각한다. 제일 그리운 부분은 의외로 한국에서만 잘하는 음식들과 카페다. 한식 자체가 그립진 않다. 영국에도 맛있는 한식이 많고 나도 해야하니 적당한 맛으로 하게 된다. 하지만 특정 맛, 식재료, 도구가 필요한 음식들이 그립다. 주로 솥밭, 사골 국물 등이 있다. 카페는 왜 그립냐하면, 한국에서는 기분 전환 삼아 카페에서 노트북을 한 적이 많았다. 여기는 아기자기한 카페가 많아 다른 매력이 있지만 유리 통창의 탁 트인 한국 카페가 역시 좋다.
삶에 여유시간이 확실하게 더 생겼다. 여가 시간이 더 많아져 이런저런 것들을 할 수 있다. 가끔은 게임도 하고 코드도 짜고 책도 읽는다. 다만 이건 나라의 차이보다는 이전 회사는 내 인생의 일부를 같이 살아가는 스타트업이었고 지금 회사는 대기업이니 그렇다고도 생각한다. 가족이 생겼을 때 왜 큰 기업을 선호하는 사람이 많은지 느끼고 있다.
일에 대해서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잘 쉰 만큼 집중력이 조금 더 좋아진 느낌이 든다. 조직 구조가 조금 더 안정되어 있고 자신의 일에 더 집중할 수 있는 구조여서 그럴 수도 있다. 어떤 것이 필요한지, 왜 필요한지가 훨씬 선명하게 보이게 되었다. 그런 만큼 일에 여유도 가질 수 있다.
어쩌면 여기에 꽤 오랜시간 정착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람들도 좋고 일도 괜찮다. 밥도 걱정과 달리 맛있고 요리하기에도 좋다. 삶에도 전반적으로 여유가 생겼다. 스트레스도 많이 줄어들고 더 웃고 있다. 한국인으로서 필요한 부분도 있지만 어느 지역이나 내 선호를 전부 맞출 수 있으리라 생각하진 않는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